Snoop Dogg







Chapter 1. Calvin Broadus a.k.a "Snoopy"

나는 1971년 10월 20일 캘리포니아 롱비치(Long Beach)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코르도자 캐빈 브로더스(Cordozar "Calvin" Broadus).
어머니 비벌리(Beverly)와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 버넬 베르나도(Vernell Varnado)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 이혼했다고 한다.

난 삼 형제 중 둘 째다.
어머니 그리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어머니는 나에게 강아지를 닮았다며 'Snoopy'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의 이 별명이 결국 세상이 아는 내 이름이 될 줄이야,
그 때는 꿈에도 상상 못 했던 일이다.

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릴 적부터 신문 배달과 사탕 장사를 해야만 했지만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5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했으며, 피아노 연주도 곧잘 했다.
할아버지와 교회, 그리고 어머니는 내 유년 시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13살이 되던 해 난 리틀 리그에서 잘 나가는 풋볼 선수였다.

그 때 함께 팀을 이뤘던 친구들 대부분은 갱이 되었고 그 중에 절반 이상이 감옥에 갔거나 죽고 말았다.

1984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삶에 대한 회의감으로 난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15살, 난 롱비치의 파란색을 상징으로 한 란 갱단에 가입한다.
신문을 돌리며 일주일에 50달러씩 벌던 내가 마약을 팔아 일주일에 1,000 달러도 넘는 돈을 벌 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무척 신나는 일이었다.
갱 생활 중 롱비치 폴리테크닉(Long Beach Polytechnic) 고교에 진학했다.
이 곳에서 내 아내가 된 샨테 테일러(Shante Taylor)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난 큰 키 덕에 인기 있는 농구선수이자 뛰어난 래퍼로 인기를 얻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한 달 후 난 마약 거래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처음으로 체포되고 만다.

그로부터 3년간은 참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감옥에서 보내야 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소일거리가 있었다면 감옥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랩으로 써주고 20달러씩 받은 일.
친구들은 내게 다시는 이런 곳 오지 말고 래퍼로 대성하길 바란다는 말을 꼭 했었다.





Chapter 2. Death Row Inmate "Snoop Doggy Dogg"

내 나이 18살.
어릴 적 친구들이었던 네이트 독(Nate Dogg), 워렌 지(Warren G)와 함께 우리가 살던 거리의 번호를 딴 그룹 213을 만들었다.

우리는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고 이미 N.W.A 라는 그룹과 프로듀서로 유명했던 워렌 지의 형 닥터 드레(Dr. Dre)에게 우리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닥터 드레는 우리의 음악에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꽤 실망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닥터 드레는 그의 첫 번째 사운드트랙 참여작인 빌 듀크(Bill Duke) 감독의 (1992년)에 나를 기용했고
자신의 솔로 데뷔작이자 웨스트 코스트 힙 합 특히 '지 펑크(G-Funk)'의 서막을 여는 [Chronic](1992년) 앨범에도 날 전면에 내세웠다.

앨범의 히트는 그래미(Grammy Awards) 수상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난 유명한 갱이었던
서지 나이트(Suge Knight)와 닥터 드레가 운영하는 <데스 로>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독립 레이블이었던 <데스 로>는 닥터 드레의 앨범으로 메이저 레이블인 <프라이어티(Priorty Records)>와 배급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난 솔로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1993년 8월 25일 나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내 친구이자 갱단의 일원인 22살의 필립 울드매리엄(Phillip Woldemariam)을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내 보디가드 격이었던 맥킨리 리(McKinley Lee)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지만 경찰은 이미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 듯 싶었고
난 결국 1급 살인과 총기소지 혐의로 기소된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그러한 와중에 내 인기는 더욱 상승했다는 점이다.
때 맞춰 발매된 나의 솔로 앨범 [Doggy Style](1993년)이 신인으로서는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했고
5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다행히도 서지 나이트가 1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넣고 날 잠시 석방시켜줬고,
난 와 여러 토크쇼에 나가 나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었다.

또한 30분 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를 닥터 드레와 함께 제작했고, 1994년 2월에는 영국 투어에도 나섰다.
나의 공연은 연속 매진이었지만 영국 상원에서는 살인자인 날 영국 밖으로 추방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해 5월 20일에는 나와 아내 사이의 첫 아들이 태어났다.
난 이제 아버지로서 1995년 58주간 계속되었던 재판을 받게 된다.
지루한 공방 끝에 1996년 2월 20일 난 드디어 무죄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25세의 나이로 두 번째 앨범 [Tha Doggfather](1996년)를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재판이 끝난 후 난 절친한 동료인 투팩(2Pac)과의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그 해 9월 7일 투팩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의문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현실이었고 11월 12일 발표된 나의 두 번 째 앨범은 그에게 헌정하는 앨범이 되고 말았다.
미디어는 랩 전쟁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로 사건을 확대했고 심지어 흑인의 적은 바로 흑인(Blacks Against Blacks)라는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1997년 3월 9일 뉴욕의 래퍼로 나와도 친분이 있었던 노토리어스 비아지(The Notorious B.I.G.)가 LA에서 역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난 정신적으로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 와중에 서지 나이트는 가출옥법 위반으로 철창 신세를 지게 되었고 이미 닥터 드레가 떠난 <데스 로>의 재정 상태와 뮤지션들의 사기는 최악이었다.
결국 난 1998년 1월 16일 <데스 로>와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했다.





Chapter 3. No Limit Soldier "Snoop Dogg"

'서지 나이트'라는 일종의 갱 조직에 소속되어 있던 나와 계약하려는 레이블을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았어.

하지만 역시 유력한 갱 집단의 리더 '마스터 피(Master P)'가 이끄는 뉴올리언즈(New Orleans)의 신흥 레이블 <노 리미트>가
나와의 계약을 희망했고 결국 1998년 3월 13일, 난 그들이 외치는 이른바 '노 리미트 솔저'가 된다.

그리고 난 무위로 돌아간 EP 앨범 [Doggumentary]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3번째 정규 앨범
[Da Game Is To Be Sold, Not To Be Told]를 그 해 8월 4일 급하게 발표했다.

역시 전의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는 했지만 사람들은 프로듀서와 게스트들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고
난 음악적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숙고 끝에 찾은 해답은 바로 과거로의 회귀. 바로 가장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그 때의 라인업으로의 복귀였다.
그래서 조급하게 발표한 새 앨범이 바로 네 번 째 앨범인 [Top Dogg](1999)이다.

이즈음 내가 떠난 <데스 로>에서는 나를 모방한 와이지디 탑 독(YGD Top Dogg)이라는 래퍼를 전면에 내세우며
날 조롱하기 시작했지만, 거의 동시에 발매된 그와 나의 싱글에서 내가 완승을 거두고 잠잠해졌다.

[Top Dogg] 앨범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확실히 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더 나아가 후에 <노 리미트>와 결별한 후 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에 대한 첫 시도는 프로젝트 그룹 이스트 사이더즈(Tha Eastsidaz) 결성과 앨범 발표였다.

이미 예전부터 함께 음악을 해왔던 트레이 디(Tray Deee)와 골디 락(Goldie Loc)이 나의 파트너였고 앨범은 새롭게 설립한 <도그 하우스(Dogghouse Records)>를 통해 발표했다.

또한 지금까지의 인생, 특히 재판과 음악, 아버지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서부의 경계가 무너진 랩 음악계의 경향에 맞춰 많은 뮤지션들과 곡 작업을 하게 된다.

특히 2000년에는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들 우탱 클랜(Wu-Tang Clan)이나, 제이 지(Jay-Z), 팀발랜드(Timbaland) 등과 작업을 진행했다. 닥터 드레의 [2001] 앨범이나 에미넴, 엑지빗(Xzibit)등 <애프터매스(Aftermath Records)> 진영의 앨범 참여는 당연한 것이었고.
결국 나의 <노 리미트>에서의 마지막 앨범이 될 [The Last Meal]이 12월 19일 발표되기에 이른 거지.

이 앨범과 함께 이름을 약간 바꾼 나의 레이블 <도기 스타일(Doggy Style Records)>에서는 여성 R&B 그룹
도기스 앤젤(Doggy's Angel)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레이블에는 위에 언급한 프로젝트 그룹 이스트사이더즈의 멤버들과 싱어인 코케인(Kokane)과 네이트 독,

그리고 프로듀서 배틀캣(Battlecat) 외에도 여성 래퍼 레이디 오브 레이지(Lady of Rage), 수파플라이(Soopafly),
그리고 가장 기다려온 도그 파운드(Tha Doggpound: Kurupt, Daz Dillinger)까지 합세해서
그야말로 1992-1996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다 모였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다!






Long Beach를 대표하는 뮤지션, Bigg Snoop Dogg의 컴백 스토리

Death Row, Snoop Dogg과의 조우
1990년대 초반의 미국 힙합계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엄청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여러 레이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동서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힙합 열풍은
흑인들뿐 아니라 중산층 백인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얻게 되는 등
‘문화’로서 그 위치를 확고히 굳혀 나갔다.
그리고 그 주동 세력에는 Death Row의 이름도 있었다.

전직 미식 축구 선수와 보디 가드 출신으로 유명한 인물 Suge Knight과 Rutheless Records 소속으로
이미 NWA라는 전설을 만들어냈던 Dr. Dre가 함께 시작한 Death Row는 Interscope Records와 배급 계약을 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물론 그들의 꿈과 야망을 함께 이뤄갈 뮤지션들을 빼 놓을 수는 없다.
The DOC, Lady Of Rage, Dat Nigga Daz, Jewell, Kurupt, RBX… 그리고 Snoop Dogg.
1972년 10월 20일 캘리포니아 Long Beach에서 태어난 Calvin Brudus는 어렸을 때부터 Snoop이란 별명으로 자주 불렸다.

그 별명을 지어준 이는 바로 그의 엄마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Calvin이 애니메이션 Peanuts에 나오는 강아지
Snoopy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두 명의 다른 형제들과 함께 성장한 Snoop은 George Clinton이나 Isley Brothers 등의 블랙 뮤직 클래식들을 들어왔으며
고등학교 때는 학교 친구들과 랩배틀을 벌이며 음악에 대한 뜻을 비추기도 했으나
부유하지 않은 가정 상황은 어린 Snoop을 마약 딜러라는 옳지 않은 길로 몰아가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감옥을 오가며 불안정한 생활을 반복하던 Snoop…
하지만 감옥 안에서 간간히 열리던 랩 공연을 통해 그는 자신의 인생 항로를 ‘음악’으로 선회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당시 큰 도움을 준 건 Warren G였는데 그는 Snoop의 절친한 친구이자 Dr. Dre의 이복동생으로
Nate Dogg과 Snoop, 그리고 그 자신이 함께 조직한 랩 팀 213의 데모 테잎을 자신의 형에게 건네 주었고,
그 즉시 Dr. Dre는 Snoop의 영입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Doggystyle]부터 [The Last Meal]까지…

Death Row와 계약한 Snoop Dogg이 처음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 것은 영화 사운드 트랙 [Deep Cover]를 통해서였다.
Dr. Dre가 프로듀싱한 타이틀 트랙 ‘Deep Cover''에서 Snoop은 Dr. Dre와 함께 환상의 랩핑을 들려주었는데
그것은 Dr. Dre라는 새로운 프로듀서와 Snoop Dogg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랩퍼의 등장을 알리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이 앨범에 이어 1992년 발매된 Dr. Dre의 [The Chronic]은 말그대로 힙합 역사를 다시 쓰게한 앨범으로
G-Funk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알린 앨범이 되었다.

물론 앨범의 상당 부분에 피처링한 Snoop Dogg의 활약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독특한 억양과 발음, 그리고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Snoop만의 랩핑 스타일은
단번에 청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그 주목은 그의 데뷔 앨범 [Doggytyle]에 대한 기대 증폭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분명 데뷔 앨범임에도 [Doggystyle]이 발매되기 전, 이미 150만장의 음반 선주문이 있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기대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듯.
결국 ’What''s My Nmae?''과 ‘Gin & Juice'' 등의 수퍼 싱글들이 수록된 [Doggystyle]은 발매와 동시에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Snoop Dogg을 그래미 시상식 수상자 명단에 올려놓는 과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Snoop 역시 시련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데뷔 앨범 발매 후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어 근 3년간의 시간을 법정에서 허비해야 했기 때문.

Snoop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Murder Was The Case]라는 단편 영화와 사운드 트랙을 만들어
수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는데 결국 이 사건은 1996년 2월 Snoop Dogg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며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Snoop은 4년 만의 신보 [Tha Doggfather]를 발매했다.
하지만 이미 Death Row를 떠나 Aftermath라는 자신 소유의 레이블로 떠나버린 Dr. Dre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물론 힘든 일을 겪은 이후 가사 면에서는 크게 성장했으나 Death Row의 그 누구도 Dre 박사님을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것인데
명성만큼이 앨범 판매고는 올렸을지언정 데뷔 앨범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진 못한 앨범, 그것이 바로 Snoop의 두 번째 앨범이었다.

Dre의 부재와 Suge Knight의 감옥 수감으로 이어진 Death Row의 수난기, 결국 Snoop도 2Pac과 BIG의 죽음 이후,
자신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내세우며 Death Row를 떠나 Master P의 No Limit으로 이적해버렸다.

이적 이후 그는 [Da Game Is To Be Sold, Not To Be Told]라는 의미심장한 타이틀의 세 번째 앨범을 발매했다.

남부 힙합의 대명사격인 No Limit에서 Long Beach 뮤지션의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힙합 팬들은 없었을 텐데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앨범은 꽤나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여전히 차트 1위에 등극했지만 ‘Doggz Gonna Get Ya'' 같은
히트 곡에도 불구하고 앨범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리던 Snoop Dogg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No Limit 산하의 두 번째 앨범 [No Limit Top Dogg]에는 ’Buck''em''이나 ‘Bitches Please'', ''Ghetto Symphony''
등의 멋진 곡들이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Dre가 세 곡의 프로듀싱을 담당하며 Snoop 곁으로 돌아온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80년대 사운드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이 앨범은 ’가장 Snoop다운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아내기에 무리가 없었다.
No Limit에서도 이런 앨범이 나오는구나…
아마 꽤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이후 No Limit과의 계약이 끝나갈 즈음인 지난 해, Snoop은 [The Last Meal]이라는, No Limit 레이블과의 결별을 염두해 둔 듯한
타이틀의 앨범을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 Snoop은 [The Last Meal]이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솔로 앨범임을 강조했는데
Timbaland의 작품인 ’Snoop Dogg(What''s My Name? Part. II)''나 ‘Set It Off'' 등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다시 Long Beach 뮤지션으로 우뚝 서고픈 Snoop의 바램이 진하게 풍기는 앨범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젠 사진이나 영상으로밖에 볼수 없지만...
요즘 이하늘 덕분에 조금더 유명해진 투팍(좌측)의 모습도 보인다......
나도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중에 하나가 투팍이지만....
합법적으로 편집한 음악을 가지고, 어쩌니 저쩌니 입담늘어놓는건 좀 안좋은거 같다.
어떤가수는 되고, 어떤가수는 안된다는 기준이 있다는것도 좀 우습고....


뭐 DJ DOC 좋아하긴 하지만....
흑인들의 음악성만 따라가야지 생활까지 따라가려 들진 말그라~~~
우리나라랑은 문화가 다르다~ 문화가...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좋을수도 있다....

암만 그래도 글치....미아리 복스가 뭐냐?!

by KIMILCOM | 2004/06/22 18:34 | MUsic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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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룰루랄라 at 2004/06/22 21:17
아.. 너무 길어요.. 읽기 기차너~~
Commented by 민물장어 at 2004/06/23 09:51
미아리복스는 원래 그동네에서 별명이 미아리 복스라던데..
것도 오래전에 붙여진 별명이라구..
Commented by 민물장어 at 2004/06/23 09:55
사실 베복이 힙합하는거랑 무뉘준이 롹~하는거랑 그게그거 또이또이인듯한데..
역쉬 본인이 싫으면 안들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는 동감.
Commented by KIMILCOM at 2004/06/23 10:16
베이비복스가 힙합을 하던, 문희준이 롹을 하던....
별로 관심은 없죠.....

걍 이하늘이 공인의 입장에서 개념없이 설쳐대는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그게 싫을뿐.....
나도 투팍 좋아하지만, 이건 뭐 우상숭배하는것처럼 들리더군요...
사실 인간 그 자체로써는 투팍이 존경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넘도 경찰한테 총쏴대는거 아닌지.....^^;

PS) 엑스타시란 노래 개인적으로는 참 잘 만든곳이라고 생각함.
베이비 복스 노래라는게 다소 아쉽지만 서도....
Commented by 쑤기 at 2004/06/23 15:03
음악적으로만 비판하던지... 왜 거기에 미아리복스니 어쩌니 쓸데없는 말을... 디오씨는 뭐가 그리 잘나서.
저런 말을 했다는거 자체가 삼류로 바께 안 보여..
Commented by Likka at 2009/10/09 17:30
우와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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